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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공시간(vs 공부에 소비한 시간), 생활공부(對 엘리트 공부), 직장에 다니며 공부하기(vs 전업 수험)를 테마로 글을 쓸 때가 되었다. 비슷한 주제의 글이 많으므로, 간단하게 쓰겠다.
I. 순공시간 : 성과중심 공부 경영의 핵심
고승덕 변호사가 하루에 17시간을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포인트를 잡자면, '17시간이나' 공부했다는 것보다는 '수면시간 6시간과 기타 1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를' 공부에 투자했다는 것, 그 결과로 1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어서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3관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주어진 수험기간이 그보다 길고 이루어야 하는 성취가 고시 3관왕이 아니라면, 하루에 17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대해석도 가능하다.
시험 합격, 자격증 취득, 특정한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면,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다다르기 위한 각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나가거나 부분적인 성취를 하나하나 이루어야 한다. 각각의 성취를 얻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중요한 자원이 바로 순공시간이다.
순공시간을 총(總, gross)과 순(純, net)의 대비로 정의하자면,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나와는 있었으나) 실제로 공부에 쓰이지 않은 시간을 뺀, 말 그대로 순수하게 공부하는 데에 사용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학습시간(ALT, Academic Learning Time)의 정의인 "지적으로 활발하게, 잘 해내면서, 생산적으로 학습하는 데에 사용된 시간"(actively, successfully, and productively)과 거의 같다.
공부에 사용한 시간 대비 순공시간의 비율은 생각보다 낮다. 밥때를 끼지 않고 50분 공부 후 10분 휴식을 반복하는 '자투리 공부'의 순공시간율은 약 80%이다. 중간에 밥을 한 끼 먹고 평소보다 조금 길게 쉬는 '한나절 공부'의 순공시간율은 약 70%이다. 중간에 밥을 두 끼 먹고 짧은 운동을 하며 평소보다 조금 길게 쉬는 휴식을 두 번 넣는 '전업 공부'의 순공시간율은 약 60%이다.
공부에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순공시간율은 내려간다. 이것도 로봇처럼 스케줄을 지킬 때에 달성할 수 있는 비율이고, 슬럼프를 겪는다면 순공시간율이 30% 언저리로 내려가기도 한다. 도서관에 열 시간쯤 나와 있었지만 인강은 서너 개밖에 못 들었고 딱히 뭘 더 하지도 않은 날이 그 예이다.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전업 수험생과, 하루 3시간의 순공시간을 꾸준히 확보하는 회사원은 사실상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 회사에 다니며 세무사 시험이나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사람이 꽤 많이 나오는 이유가, 오랜 시간 공부하였음에도 고배를 마시는 수험생이 상당히 자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II. 생활공부 : 내가 원하는 수준의 공부
아마추어 달리기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는 다양하다. 완주, 10km를 50분 이내에 달리기, 개인 기록 경신, 10위 안에 들기… 순위와 기록이 중요한 엘리트 체육과의 차이점이다. 내가 원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다는 점에서 생활공부는 생활체육을 닮았다.
원하는 수준의 공부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 필요에 따라 목표 수준을 조정하되 너무 쉽게 타협하지는 않는 것, 줄세우기식 비교 앞에서 자신의 목표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변호사라도 따려고?', '변호사 안 딸 거면 법 공부는 왜 한대?' '변시 칠 것도 아니면 대충대충 해도 되잖아?', '그래도 법무사는 따는 게 좋지 않겠어?' 같은 질문 앞에서 꺾이지 않으려면 말이다. (예시로 들기는 하였으나, 참으로 무례한 질문들이다. 글을 읽고 기분이 나빠진 분께는 정중히 사과드리며, 혹시라도 이런 질문을 하던 사람에게는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 거 묻지 말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아마추어 달리기 대회의 참가 목적이 반드시 우승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설렁설렁 달린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 안에서는 충분히 치열하게 달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활공부의 목표가 반드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최상위 스펙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대충대충 공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각자의 목표는 그 자체로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III. 직장에 다니며 공부하기 : 나의 형편에 맞는 공부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부담을 견디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형재
공부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공부를 하지 않으며 직장에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며 공부를 해야 한다.
직장에 다니며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무리 없이 지금 당장 확보할 수 있는 순공시간 내에서 다음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②나 ④는 지금 정하지 않아도 좋다)
①이번 단계의 공부 : '지금 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장기 목표의 막연함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②그 다음 단계의 공부 : 이번 단계의 공부와 단기·장기 목표를 이어준다.
③6개월~1년을 내다본 단기 목표 : 이번 단계의 공부에 의미를 부여한다. 공부의 지겨움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④3년~10년을 내다본 장기 목표 : 비전을 제시한다. 다음 단계의 공부를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물론 이러한 계획은 시간의 흐름과 사정의 변경에 따라 바뀔 수 있다.
IV. 생활공부법의 몇 가지 가정
이 시리즈의 글은 다음과 같은 가정 하에 작성되었다.
모든 사람이 이 가정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이 가정은 이런 점에서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피드백을 환영하고, '이 가정이 틀렸으므로 이 글은 틀렸다'는 피드백은 정중히 사양하겠다는 취지로, 생활공부법 각론의 전제가 되는 가정을 설명하겠다.
1. 각 학습 주기의 성취곡선은 S자형이다.
: 워밍업 시간 동안에는 성취가 느리고, 집중을 유지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오르며, 집중력이 떨어질 때쯤 다시 성취가 느려진다는 가정이다. 이 가정을 바탕으로 다음 주장이 성립한다.
①적당한 휴식은 학습의 효율을 높인다.
②학습량을 적당히 쪼개서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벼락치기보다 효율적이다.
※② : 가정2에서 언급할 '최후의 회독'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주장②의 요지는 "첫 학습과, '최후의 회독' 이전까지의 복습은 적당히 쪼개서 꾸준히 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최후의 회독은 망각에 저항하기 위한 전술이고, 꾸준한 공부는 S자형 성취곡선의 꾸준히 상승하는 구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최후의 회독과 꾸준한 공부는 모순되지 않으며, 양립 가능하다.
2. 같은 내용을 반복 학습하면 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 이 가정은 망각 앞에서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된다. 여기에 덧붙는 가정은 다음과 같다.
①2회독, 3회독, 4회독까지는 1/3으로 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다.
2회독에 30시간이 걸렸다면, 3회독은 10시간, 4회독은 3.3시간까지 줄일 수 있다는 가정이다.
②원리의 디테일은 3일(72시간)까지, 암기사항의 디테일은 1일(24시간)까지 충분히 유효하다.
이 가정에 따르면, D-3, D-2 양일간 원리 위주로 전범위 회독하고 최후의 암기사항은 D-1에 체크하면 된다.
③시험에 대비하는 공부는 마지막 3학습일, 좀 더 공부량이 많은 시험이라면 마지막 12학습일(9일+3일)에 몰아칠 최후의 회독에 대비하는 공부가 된다.
④시험과 상관없는 공부는, 나중에 공부한 내용을 찾아볼 때 빠르게 되살릴 수 있도록 깔끔하게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이 된다.
※① : 첫 학습에 90시간이 걸렸을 때 2회독에 30시간이 걸린다는 보장이 없어 첫 학습은 제외하였고, 4회독에 3.3시간이 걸렸을 때 5회독을 1.1시간까지 줄이면서 전범위를 복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5회독 이후도 제외하였다. 세 단계 정도에 걸쳐서 1/3으로 시간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가정은, 첫 학습 90시간→2회독용 복습강의 30시간→파이널 전범위 복습강의 10시간 정도의 볼륨으로 구성되는 온라인 강의 커리큘럼에 바탕을 둔 것이다.
※② : D-3, D-2, D-1에 확보할 수 있는 순공시간이 각각 5시간이고 시험 과목이 3과목이라면 다음과 같은 회독일정을 잡을 수 있다. D-3, D-2 양일 10시간에 걸쳐 전범위를 회독하려면 과목당 3.3시간이 할당된다. 가정①을 따라 4회독 3.3시간까지 줄여나갔다면 D-3, D-2에 전범위를 회독할 수 있다. D-1에는 과목당 1시간씩 투입해 암기사항을 발췌독하고, 시험감각 대비용으로 모의고사 1회 정도를 풀고 리뷰하면 된다.
※③ : 최후의 회독 때 걸리는 것이 없으려면 원리의 큰 줄기를 꿰고 있어야 하고, 마지막 암기가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암기사항의 대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④ : 나중에 찾아볼 책이라면, 첫 번째 공부할 때에는 필기의 대부분을 연필이나 샤프로 하고, 볼펜과 형광펜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첫 번째 학습할 때의 필기내용이 불완전하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높고, 첫 번째 학습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포인트에 형광펜을 그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강사가 칠판에 적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 등 오류가 없을 것이 확실한 경우에만 볼펜으로 필기한다. 나중에는 강의의 맥락이 기억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완결된 형태의 문장으로 필기하는 것이 좋다. 주어와 조사는 생략 없이 적어주고, 목적어나 필수적 부사어가 있다면 그것도 생략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사실vs당위, 불가vs금지vs거부가 명확히 드러나도록 서술어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책 없이 노트정리를 하는 상황이라면, 처음 배울 때에 원고를 휘갈기듯이 적고, 나중에 노트에 옮겨 정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처음부터 완성본 노트를 만들겠다고 작정하면 배움의 속도를 필기가 따라가기 어렵고, 글씨와 레이아웃이 지저분해지고, 문장이 깔끔하지 않아 나중에 알아보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고를 노트로 정리할 때, 너무 늦게 정리하면 원고를 보아도 내가 뭘 배워서 이렇게 적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정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 노트정리도 밀리지 않게 제때제때 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시험에 대비하는 공부라면, 학습곡선과 회독가능성을 고려하여 학습내용의 질(난이도)과 양을 결정해야 한다.
: 가정1과 2를 합치면 이렇게 된다. 매일 확보할 수 있는 순공시간이 지나치게 짧거나, 공부 간격이 지나치게 길거나(일주일에 하루, 또는 격주에 하루만 시간이 나는 경우), 시험 전 마지막 3학습일에 확보할 수 있는 순공시간이 없거나 지나치게 짧다면 시험 대비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는 의문이 든다면, 즉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별로 뾰족한 수는 없겠지만…
①암기가 중요한 시험이고 최후의 회독으로 해결될 것 같다면, 시험 전 2~3일간 휴가를 낸다.
②이해가 중요한 시험이라면, 수험기간을 늘린다.
③지금 주어진 조건 하에서 성취 가능한 수준으로 목표를 조정한다.
④시험 말고, 교육과정 수료·이수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알아본다.
⑤포기한다.
많은 휴일과 맞바꾼 시험에서 고배를 마신다는 것, 지난 몇 달간의 주말을 도둑맞은 기분이 든다는 것은 내적 성장, 넓어진 시야, 값진 경험이라는 말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불행이다. 앞서 말한 '필요에 따라 목표 수준을 조정하되 너무 쉽게 타협하지 않는 것'과 바로 위의 ③~⑤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성취할 가능성이 적당한 목표를 선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재정의를 통해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 쉽게 성취할 수 있는 키높이의 열매만 따는 것, 지나치게 어려운 목표에 도전하여 고생 끝에 실패하는 것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이렇게 쓰니 앳킨슨의 이론에 나오는, 성공추구동기가 높은 학생이 중간 난이도의 과목을 선택한다는 주장과 조금은 비슷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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